최근 '알쓸신잡' 프로그램을 다시보기했다. 각 분야의 박사님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 토크쇼를 컨셉으로 하는 이 프로그램은 하나의 주제에도 다양한 시선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프로그램은 '알아두면 쓸데없다'고 했지만, 그동안 알 수 없었던 각 분야의 전문적인 관점을 듣다보면, 쓸데있는 교양이 쌓이는 기분이 절로 든다. 단순히 박사님들이 릴레이 강연을 진행하는 형식이 아니라 전문지식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주장들의 티키타카를 보며, 시청자는 일방적으로 한 주장을 흡수하기보다는 여러 관점을 이해하게 된다.
콜라보의 장점은 이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뉴턴이라는 과학자가 예술가들의 공간인 아틀리에로 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상상에서 시작했다는 이 책에서는 같은 키워드로 과학자, 예술가가 각자의 글을 평행적으로 적어나간다. 하나의 주제로 각자의 시선이 보인다. 물론 때로는 생각의 접점이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과학자, 예술가의 시선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책 제목만큼이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동시에 멀게만 느껴졌던 과학적 시선에 집중하게 된다. 세상은 무한하고, 다양한 일들로 넘쳐나는데, 아직까지 '문과'라는 틀로 나 스스로를 제약했다. 분명 과학실을 가는 게 즐거웠고, 복제에 관한 책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적도 있었는데, 입시를 위한 틀로 세상을 관조했다. 과학, 수학은 내 분야는 아니라며 경계지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만나게 될 다양한 분야는 선으로 그어질 수 없다. 알아두면 절대 쓸데없지 않다.
과학은 거대한 우주 속 미약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하고, 예술은 그 미약한 우리의 작은 마음을 우주로 확장한다. 우리는 한낱 우주먼지이지만 동시에 온 우주이기도 하다. 그러니 한 사람을, 사물을, 현상을 단 하나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그것에 숨겨진 무한한 세계를 발견할 수 없다.
-김초엽(소설가), <뉴턴의 아틀리에> 추천의 말-
뉴턴의 아틀리에 INSIGHT
우리는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른다_김상욱
벌들이 이주하는 과정은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다. 이주할 때가 되면 정찰벌들이 나가 좋은 장소를 찾아다닌다. 좋은 장소를 찾은 정찰벌들은 그 장소에서 8자를 그리며 춤을 춘다. 이때 바로 그 장소로 이동하지 않는다. 음원 차트 내 경쟁처럼 좋은 장소를 찾은 정찰벌들 간의 경쟁이 시작된다. 그 중 많은 벌들이 모인 곳이 채택되면, 이주를 시작한다. 집단지성을 통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평균은 분포를 전제로 한다. 자연의 모든 무작위적인 사건은 정규분포로 나타난다. 사람이 개입하고, 인위적인 시도를 시작하는 순간 이 정규분포는 깨진다. 권력 분포, 부의 분포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작위적인 분포는 곧 자연적인 흐름을 깨뜨리고,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중세시대에는 교회에게, 산업시대에는 자본가에게 몰린 권력은 예술의 자유를 제약했다. 일반 민중을 희화화하지 않은 그림은 17세기가 되어서야 등장한다.
해답은 어디에 있을까? 벌들처럼 집단지성을 이용해 평균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민주주의가 아닐까?
삼라만상은 구의 정신을 오롯이 품고 있다_김상욱
구는 수학적으로 완벽한 도형이다. 중심점에서 거리가 같은 점들의 집합인 이 도형은 방향성이 없다. 텅 빈 우주를 가정했을 때, 방향성을 확정할 수 없다. 다만, 이때 나 이외의 다른 존재가 있을 경우, 방향성이 생긴다. 물체 2개가 충돌하지 않기 위해 물체의 중심을 향하는 중력이 생기고, 중력으로 만들어진 구조는 구형이 된다.
그렇다면, 구의 정신이란 무엇일까? 구는 중심에서 모든 점으로 향하는 방향이 동등하다. 특별한 방향이 없어 구 표면의 모든 장소가 평등하다. 이 의미를 알았을까.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은 중국을 세상의 중심에 놓기 위해 세상이 편평하다는 지방지정설을 주장했고, 실학자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지원론을 주장했다.
기계 아닌 인간의 마음은 몸과 연결되어 있다_유지원
몸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요즘 들어 부쩍 체감한다. 코로나로 집밖의 외출이 쉽지 않아지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 역시 있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집 근처 헬스장을 다니면서부터는 그래도 스트레스 관리가 쉬워졌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도 조금은 활력을 얻은 듯 했다. 유투브의 홈트레이닝 채널 조회수가 늘어나고, 헬스에 빠졌다는 친구들의 연락을 받을 때면 건강에 대한 관심이 나만의 일은 아닌 듯 하다.
이렇듯 몸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쳐왔지만, 사실상 지능에 비해 관심을 덜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순차적인 언어로 기술되는 서술기억 외에도 자전거나 악기처럼 몸의 동작으로 기억되는 절차적 기억이 있음에도 우리는 매번 앉아서 글로 쓰는 공부를 공부라고만 생각했다.
인공지능과 예술의 영역을 키워드로 둘 때, 언제나 인공지능이 그리는 작품을 예술의 영역으로 볼 수 있는지만 떠올랐다. 인간의 의도성이 예술의 여부를 따질지 중요하다는 점과 이러한 질문 자체가 정치성을 띈다는 부분으로만 생각이 뻗어나갔다. 하지만 유지원 저자는 아예 다른 부분에 집중한다. 인공지능이, 지금의 기술이 우리의 몸에 어떤 제약을 가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르네상스 시대 화가는 캔버스 앞에 몸을 고정하게 된다. 인쇄술이 발달하고, 책을 읽는 사람들은 침묵 속에 몸을 고정한다. 지금은 휴대폰, 컴퓨터 앞에 몸을 고정하게 된다. 주변에 대한 시선, 소리를 차단하고, 맛집 리스트와 추천 리스트에 따라 이동 동선을 고정하고, 우연하고 새로운 만남보다는 SNS를 통한 관계로 고정한다. 이렇듯 의식조차 못했던 기술의 변화가 우리의 몸을 제약하고, 고정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저자는 묻는다.
기계는 우리 몸의 가능성을 박탈해 갈 수 있다. 모르는 사이에 벌어질 수 있다. 기계로 인간의 의도를 재현해낸 예술이 생겨날 수 있지만, 과정에서 인간의 몸을 활용한 가능성은 점차 없어질 수 있다. 예술의 역할은 이러한 지점을 착안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반추해보도록 하는 것, 그것이 인공지능 시대 속 예술가가 해야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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