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담론에 대한 이슈로 뜨겁다.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과정에서 보안검색요원을 직접 고용에 대한 반발이 끝나기도 무섭게 공공의대 선발을 '시, 도지사 추천제'로 뽑겠다는 대목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두 이슈 모두 경로의 불공정성이 핵심적인 요인이었다. 언제부터 공정이라는 이슈가 화제가 되었을까. 과연 공정한 절차를 통한 능력주의 사회는 진정한 의미의 정의일까. 문재인 대통령의 인용구,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는 실현될 수 있는 이야기일까.
근대화 이전 사회는 신분제를 따랐다. 개인이 태어난 집안의 선천적 지위가 기준이었다. 현대에 오면서 사회는 개인이 노력해서 바꿀 수 없는 선천성보다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를 신봉하게 된다. 말 그대로 '개천에서 용나는' 상황이 가능하다고 믿었고, 사회는 개인에게 능력을 획득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자세를 강조한다. 이러한 프레임은 현재의 공정 담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능력 본위주의 신념에서 발생한다. '20 vs 80의 사회'에서는 상위 20퍼센트와 하위 80퍼센트 사이의 불평등이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를 다룬다.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온 이민자들에서 시작된 미국 사회에서조차 능력주의의 허상이 있음을 꼬집는 책이다. 최근 공정 담론으로 뜨거운 한국에도 깊이 있는 성찰을 제공한다.

질문1. 능력주의 사회 속 기회는 평등한가?
능력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기회가 평등함을 전제한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어진 기회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중상류층은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중고등학교, 명문 대학, 좋은 스펙이 되는 인턴, 전망 있는 첫 직장과 같은 기회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 책에서는 이를 '기회 사재기' 전략이라고 표현한다. 중상류층인 부모는 자녀에게 다른 사람에 비해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고, 이러한 기회를 획득한 자녀는 노동 시장에서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반경쟁적인 방식의 결과를 두고, '능력'에 따라 이루어진 결과로 합리화한다는 점이다. 지역에 따른 인프라 차이로 인한 교육 불평등, 인맥과 연줄로 성사되는 인턴 제도는 한국 사회에서도 볼 수 있는 사례다.
질문2. 능력대로 선발되는 과정은 공정한가?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과정에서 말하는 공정과 공공의대 선발에서 말하는 공정은 모두 '시험'을 통한 과정이었다. 과연 시험을 통한 절차가 공정하다고 볼 수 있을까? 능력대로 선발되는 과정은 언제나 공정할까? '능력'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위험하다.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애초에 불평등한 환경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출발선을 무시한 채 과정을 동일하게 해야한다는 주장은 사회적 맥락과 맞지 않다. 책에서는 '대화 격차'를 예시로 든다. 고소득층 부모는 학령기 자녀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저소득층 부모보다 일주일에 평균 세 시간이나 많으며, 3세에 전문직 가정 아이는 가난한 가정 아이보다 집에서 3000만 단어를 더 듣게 된다. 이외에도 자녀가 풍성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지출 면에서도 격차는 존재한다. 태어난 환경에서 발생하는 선천적인 격차는 특권이 되고, 출발선에서의 우위를 점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는 출발선까지 오는 과정은 무시한다.
질문3. 능력주의 사회는 정의로운가?
능력주의에 대한 신념은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불평등의 대물림을 무시한다. 대물림된 지위를 정당화한다.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획득된 지위라고 합리화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능력주의 사회는 계층 이동성을 막으며, 계급을 유지하고 영속화한다. 상위 계층의 부모는 자녀의 안전망을 만들어주기 위해 유리바닥을 깔고, 기회 사재기를 한다. 이러한 불평등한 메커니즘을 인정하고, 변화시키려는 노력 없이는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없다. 공정 담론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공정'은 중요한 키워드다. 하지만 애초에 특정한 계층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사회에서는 허황된 말이다. 이러한 상황이 취업이 힘들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이와 차별을 아는 청년 계층에게서 나왔다는 서사가 허탈하기도 하다. 하지만 분노의 방향은 공정한 절차가 아니다. 능력주의라는 합리화에 기댄 기득권층의 불평등한 지위재이다. 변화는 어렵다. 하지만 능력주의의 폐단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부디 정부의 방향이 누군가에게만 해당되는 공정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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