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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 덕질

[김태호] #4 청춘 festival, "끊임없이 날갯짓을 해보자. 태양열에 타죽는 한이 있더라도."

by cho_bibim 2020. 4. 1.

https://www.youtube.com/watch?v=XOK88oiEBWs

-방송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어렸을 때부터 TV 보는 것을 좋아했다. '만들어야지'가 아니라 '가서 많이 봐야지' 생각으로 입사했는데, 대학에 진학할 때, 부모님이 고시 보기를 원하셨다. 아들을 잘 몰랐던 거다. '어떻게 하면 PD가 될까' 고민을 하다가 거짓말을 했다. "신방과를 가도 고시 공부하는 사람은 많다." 실제로 고시원에서 6개월 간 생활을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집에서 항상 TV를 볼 때, 부모님께서 "야 너 공부 좀 해" 이럴 때, "제 전공 공부하는 거예요"라고 했다.

면접 볼 때 다른 것 신경 안 쓰고, 앞에 이사님, 사장님, 국장님 앉아있지만, 입사를 해야 이사님, 사장님, 국장님이지 떨어지면 그냥 동네 아저씨다. 그래서 '내가 왜 굳이 여기서 떨고 있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속으로 '넌 부동산에 와 있다', '넌 복덕방에 와 있다'라고 하면서 '이 아저씨들은 바둑 두던 아저씨들이다' 생각을 했다. 면접을 보면서 내심 '나는 잘 듣는 사람이에요'라는 걸 심어주고 싶었다. 같이 면접 보는 분들이 얘기를 하면 대놓고 잘 듣는 제스처를 취했다. 면접관들한테도 오히려 질문을 던지고 약간 당황해하시고. 나름 면접을 즐기다 나왔다. 

 

-노란 머리로 면접을 봤는데, 믿는 구석이 있었는지?

안 될 거라는 생각을 안 해봤다. 아무리 경쟁률이 높고 나보다 스펙이 더 좋은 사람이 있어도 실질적으로 내 입장에서 보면 경쟁률은 2:2다. 되느냐. 마느냐.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도 말고 쉽게 가자고 생각하는 생활의 중심이 있었다. 

 

-조연출 당시 그만두고 싶은 적은 없었는지?

순간순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기간이 없었으면 이 자리에 못 왔을 것 같같다.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고, 가장 짧은 시간에 혹독하게 지나갔던 시간인 것 같다.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많다. 방송이 나갈 때. 방송 나가고나서의 반응을 봄보면 그동안의 과정은 기억도 안 난다. 과정은 항상 힘들고 고되지만, 결과의 단맛을 보면 마약처럼 고통은 사라진다. 고민하고 기획했던 것이 잘 촬영되고 마무리돼서 그것보다 배로 좋은 반응을 얻었을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돌아가면서 사랑과 욕을 먹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면 흔들리지니 않는지?

사실 방송이 나가서 멘트나 비판을 받으면 전적으로 PD의 책임이 크다. '왜 이런 사람을 썼느냐', '왜 캐스팅을 했느냐'는 이미 PD의 손을 거쳐간 것이기 때문에 1차적인 책임이 있고, 2차적인 책임도 본인이 판단해서 괜찮다고 생각한 사람의 캐릭터를 제대로 못 살린 것이기 때문에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극도 되고. 제일 솔직한 건 같이 시청자들하고 같이 고민하는 거다. 

 

-흔들리는 청춘들에게

정답은 항상 자기 안에 있다고 말을 한다. 주변에서 하는 얘기를 참고하긴 하지만, 항상 내가 내린 결론이나 정답을 보면 처음에 은연중에 내렸던 결론에 흡사한 방향으로 갔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베이스를 까는 것도 중요하다. 항상 보면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아이템 선정을 할 때, 반반 의견이 나뉠 때가 많은데, 그때 피디는 결정자로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 한다. 항상 판단이 옳았던 건 아니고, 그렇다고 그 판단이 틀렸다고 해서 자책하고 있고 아쉬워하면 다음 일을 하지 못한다. 다음에는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zZU_j7PUZ8c

-김태호 PD의 리더십 스타일은?

목소리가 작다. 그래서 누구를 불러도 잘 못 듣는다. 직원에게도 솔직하게 말 못하고, 빙빙 돌려서 얘기하는 스타일인데 무한도전의 리더십은 사실 나의 리더십이 아니라 8년 동안 오면서 초창기에 시스템을 많이 바꿨다. 시스템을 바꾸면서 변화된 시스템을 체험해 온 8년 된 식구들이다.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아도, 가는 방향이, 가고자 하는 비전이 다 같은 곳을 바라보기 때문에 일사불란하게 자동적으로 움직인다. 막 진두지휘하지 않아도 그 날 콘셉트가 뭔지, 어떻게 갈 건지 얘기만 해도 손발이 착착 맞는다. 

 

-김태호 PD, 인기 비결은?

나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무한도전'을 하고 있어서 관심을 받는 거다. 나 혼자 한 게 아니다. 나와 같이, 나보다 더 잠 못 자는 후배 PD들이 있고, 밤늦게 퇴근하고, 새벽에 출근하는 작가 분들도 계시고. 중간에 있다 보니깐 앞에 있는 상황인데, '무한도전' 덕분에 수혜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할 때와 불행할 때?

8년 째 행복한 상태다. 요즘 일을 하지 못할 때 내 삶에 얼마나 슬픔을 주는지 겪고 있다. 그래서 지금이 가장 힘들 수 있다. 지난 8년은 매주 행복했다. 상상하는 것들, 해보고자 하는 것들을 할 수 있게끔 기회를 받아왔기 때문에. 원 없이 해봤고, 앞으로 원 없이 할 것이고. 그럴 거다. 

 

예능 프로그램은 항상 어느 정도 반응이 오면 안정을 찾으려고 한다. 그런데 최고로 하늘을 나려면 날갯짓을 힘차게 하다가 어느 정도 상공에 올라가서 날개 펴고 있다 치면 그냥 떨어질 수밖에 없다. 모든 예능 프로그램들이 궤도에 오르면 시청률이 오르거나 반응이 오면 안정을 추구하는데, 그게 싫었다. 끊임없이 날갯짓을 해보자. 태양열에 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래서 한주 한주 안주할 수 있는 시간은 없었고. 가끔은 준비하다 보면 성인이 아니기 때문에 심리적인 상태, 신체적인 바이오리듬 때문에 준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기존에 있었던 것과 흡사한 것을 보여드릴 때는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그 기분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더 미리 준비하고, 더 미리 조사하고 해서 조금이라도 더 새로운 것을 보여드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무한도전이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가치?

예전에는는 항상 얘길 했던 게, '2% 부족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어떻게 보면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일곱 명의 남자들이 부족함은 많이 사라졌다. 시청자들의 사랑 덕분에. 어느 정도 정상에 선 다음부터는 그때도 그랬고, 같이 고민해보고 싶었던 것은 '나눔'이라는 걸 많이 얘기해보고 싶었다. '너무나 원 없이 받은 이 사랑을 어떻게 하면 돌려드릴까' 그러면서 달력이라든지, 전시회라든지 장학재단을 만들어서 장학금을 전달한다든지 이런 것들을 고민했었다. 지금도 항상 생각하는 것은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이런 일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화두를 많이 얘기해보려고 한다. 정답을 줄 수 있을 만큼 현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라는 것은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이 화두가 더 발전이 돼서 더 큰 여론 형성이 되는 게 '무한도전'이 앞으로 살아나감에 있어서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최후의 꿈은?

사실 30살 때 응급실에 실려나갔다. 그때 갈등을 했었다. 방송일을 계속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이렇게 소모적으로 내 몸이 망가지고. '그래. 앞으로 5년, 3년만 도전해보자' 했던 건데. 생각했던 기간이 아직 2년이 남았다. 나름 새로운 도전을 생각해보고 있는 중이다. 

 

-끝인사

아직 과정에 있는 사람이다. 무한도전의 PD로서 감사드리려고 왔고. 지금 10년차 MBC PD로서 있으면서 느낀 건 항상 과정은 힘들다는 것이다. 과정이 힘들어서 떠난 사람도 있고, 과정이 힘들어서 그냥 그 자리에 머문 사람들도 있는데, 결국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건 인내심인 것 같다. 

그리고 운전연수할 때 좋은 얘기를 들었는데, 항상 운전할 때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가까이를 보지 말고 멀리 봐야 운전을 잘할 수 있다." 프로그램을 하다 보면 다음 주, 다음 달, 두 달일을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힌다. 그렇지만 항상 멤버들에게 달콤한 말로 얘기하는 게 '연말의 그 느낌이 있지 않느냐', '1년이 너무 뿌듯했다. 너무 좋다'라고 하는 긍정적인 말인데. 과정을 조금 즐기고 과정을 이겨내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산 중턱에 와있다.

여러분들도 지금 힘들 수밖에 없는 길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반드시 목적하시는 곳에 다다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