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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5 분노와 체념의 언저리에서

by cho_bibim 2020. 2. 13.

사회적 소수자, 약자에게는 강자에 대응할 수 있는 2가지 방법이 있다.

분노하거나 체념하는 것.

분노는 과격한 양상으로 보일 수는 있으나 때로는 여론의 흐름을 타 큰 흐름으로 나타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대개는 분노는 강자의 손아귀 아래에서 압박당하거나 폭력으로 진압될 수 있는 위협이 도사린다.

따라서 분노는 어떤 의미에서 변화를 주도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를 수반한다.

변화를 시도했으나 계속적인 좌절과 마주했을 때, 변화는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사회적 소수자, 약자는 차라리 "똥을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생각에서 체념을 택한다.

 

분노든, 체념이든 사회적 소수자, 약자에게는 강자의 힘을 무시할 수 없기에 택해야 하는 선택이고, 변화를 바꾸려면 강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용기가 필요하다.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교환 생활 동안 같이 사는 언니는 교환을 간 학교에서 맺어주는 버디를 만났다. 버디가 이미 한국에 있는 학교에서 교환학생을 했던 터라 한국의 문화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고, 또 성격 자체가 적극적인 친구라 낯선 땅에서의 적응을 열심히 도와주었다. 맛있는 팬케이크 집에서부터 핫한 클럽까지 언니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 역시 그 친구들과 합세하여 이야기도 많이 하고, 어쩌다 벨기에에 있는 dancing bar에까지 가볼 수 있었다.

 

열심히 춤을 추는데, 뒤에서 한 여자가 손으로 밀쳤다. 순간 자리를 너무 이동해서 그랬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곧 언니가 춤을 추고자 하는 곳에서 다른 여자애가 자신의 구역에 들어오지 못하게 손으로 막았다. 그 자리에서 언니는 화가 나서 그 여자애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놀람과 동시에 걱정이 밀려왔다. 그 여자애 무리에 남성 4명이 있었고, 우리는 벨기에에 있는 아시아 여자애 2명이었다.

 

자리에서 나왔다. 언니는 버디와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당했던 설움이 있었다. 분노가 쌓였던 것이었다. 이야기를 차분히 들으니 언니의 버디는 일본 혼혈이었고, 벨기에에서 태어나 자랐어도, 불어를 매우 유창하게 하는 네이티브인임에도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지하철역에서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낄낄거리는 소리를 애써 외면하는 버디를 언니는 봤다.

 

체념. 어떤 의미일까. 분노와 체념의 언저리에서 사회적 소수자, 약자는 왜 체념을 택하는 것일까.

어차피 변하지 않을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택하는 최소한의 자유는 아닐지 생각해봤다.

비합리적인 보수가 질려서, 합리적인 진보에 손을 들었던 청년들이 조국의 잇따른 스캔들에 시위를 했지만, 촛불시위만큼 성공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체념에 있다는 한 칼럼의 내용.

걱정이 됐다. 체념은 곧 좌절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혹시나 변화에 대한 희망조차 놓아버릴지는 않을지.